18세에 입사해 34년을 몸담고 2021년 다시 CEO로 복귀했던 팻 겔싱어(Pat Gelsinger). 그는 인텔의 몰락 원인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기술 경영진이 아니라 사업 경영진(business people)이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궤도를 이탈했다." 앤디 그로브, 고든 무어 같은 창업 세대는 모두 딥테크 출신이었고, 겔싱어가 처음 임원진에 합류했을 때 20명 중 15명이 박사학위 소지자였다.
2001년 그가 처음 CEO가 됐을 때가 15년 만의 첫 '기술 리더' CEO였다고 말한다. 사업가 출신 리더는 사업가를 승진시키는 법. 그 결과 인텔은 복귀 직전 5~6년간 배당·자사주 매입으로 주주에게 1000억 달러를 돌려줬다. 겔싱어는 "그 100조 원이면 애플 아이폰 칩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10년간 새 공장을 짓지 않고 EUV 장비 투자도 미룬 게 "기술자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진단한다.
"이건 결국 기술 비즈니스다. 기술을 이해하는 사람이 기술을 이끌어야 하고, 그가 다시 최고의 기술자를 뽑아야 한다. 스프레드시트만 보고 수십억 달러짜리 반도체 투자를 결정해선 안 된다 — 기술 트렌드 자체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 한."
애플: 2008~2009년 스티브 잡스가 자체 실리콘을 결심한 배경에는 조용한 준비가 있었다. 인텔이 맥 운영체제의 x86 이식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하자 잡스는 "지난 4개 릴리스 동안 이미 그 작업을 해왔다"고 답했다. 인텔을 신뢰할 만큼 앞서가는 공급자로 보지 않게 된 순간, 애플은 자체 실리콘으로 시스템과 칩 설계를 동시에 최적화하는 길을 택했다.
엔비디아: 젠슨 황이 처음 만든 건 그래픽카드였을 뿐이고, 인텔은 전성기 CPU 사업 관점에서 "그래픽 좀 하는 게이머용 기계"라며 코웃음쳤다. 그러나 CUDA라는 소프트웨어 스택이 세대를 거듭하며 조금씩 좋아지자, 일본 HPC 연구자들이 그래픽카드를 범용 연산에 쓰기 시작했다. 겔싱어는 인텔에도 x86 기반의 유사한 프로젝트 '라라비(Larrabee)'가 있었지만, 자신이 첫 번째로 인텔을 떠난 지 일주일 만에 프로젝트가 취소됐다고 회고한다. "그랬다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TSMC: 인텔이 IDM(설계+제조 통합) 모델을 고수하며 자사 프로세스를 외부에 개방하지 않는 동안, TSMC는 "누구 칩이든, 뭘 설계하든 상관없다. 제조 파트너가 되겠다"는 파운드리 비전으로 승부했다. 겔싱어가 2001년 복귀했을 때 TSMC 웨이퍼 생산량은 이미 인텔의 5배였다(현재는 약 7배). 겔싱어의 복귀 전략 핵심 축 하나가 바로 "인텔도 파운드리가 돼야 한다"였다.
CHIPS Act는 효과가 있다는 게 겔싱어의 평가다. 2001년 미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 비중이 약 12%였다면 지금은 약 18%. 50%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실질적 진전"이라 강조한다. 인텔은 실질적 파운드리로 자리잡고 있고 TSMC와 삼성 공장도 미국에서 가동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대만은 3주 미만의 에너지 비축분만 보유. 봉쇄 3주 후 섬 전체가 정전(brownout)에 들어가고, 한번 꺼진 팹은 90일간 재가동 불가. 겔싱어는 "대만 정전의 경제적 충격은 대공황보다 클 것"이라 말하며, 총 한 발 쏠 필요 없이 "에너지 없음, 3주"만 선언해도 충분하다고 경고한다. 중국은 최근 4년간 대만해협을 7차례 봉쇄 훈련했다 — "이론이 아니다."
AI 버블이냐는 질문에 겔싱어는 "명백히 버블 요소가 있다"면서도, 에너지 공급 능력이 자연스러운 안전판이라고 말한다. 미국 전력망은 지난 10여 년간 연 1% 수준으로만 성장했지만 지금은 4~5%로 확대 중. "GPU를 사고 데이터센터를 지어도 전력이 없으면 못 돌린다" — 이게 곧 과열의 상한선이라는 논리다.
"토큰당 비용·에너지를 자릿수 5개(10만 배) 낮춰야 한다. 그래야 진짜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 폭발하며 AI 접근성이 경제적으로 열린다." 그는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기술자로 살기 좋은 시기는 없었다"며 화학, 신소재, 암 정복까지 앞으로 20년(2년이 아니라 20년) 대규모 확장을 낙관한다. 다만 SaaS 아포칼립스처럼 산업별 "다른 아포칼립스"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며, 주기적 밸류에이션 조정은 "버블이 스스로 통제되게 하는 좋은 신호"라고 본다.
양자컴퓨팅에 대해서는 "이번 10년(2030년까지) 안에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온다"고 못박는다. 트랩드 이온, 광자, 스핀 등 여러 모달리티에서 오류 정정이 이미 증명됐고, 남은 건 엔지니어링 스케일업뿐. 화학·생물학처럼 지금 계산 불가능한 문제, 물류 최적화(외판원 문제) 같은 쉬운 문제부터 순차적으로 풀리고, 암호화 관련 'Q-day'는 2032~2033년경으로 예상한다.
스웨덴 스타트업 Lovable의 창업자 안톤 오시카(Anton Osika)는 "누구나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게 한다"는 미션 아래, 프로덕트를 만드는 1단계 갭은 크게 해결됐고 이제 그 위에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2단계 갭을 메우는 데 집중한다고 밝힌다.
고객의 80%는 비개발자다. Lovable은 "의견이 확실한(opinionated)" 아키텍처로 결제·보안·이메일 연동을 원클릭에 처리하고, 매 변경마다 백그라운드 보안 스캔을 자동 실행한다. 흥미롭게도 기술 배경이 있는 20%의 엔지니어들도 이 방식을 좋아하는데, 모범 사례가 이미 아키텍처에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제이슨의 파운더 유니버시티 프로그램에서 한 직원이 4~8시간 만에 전체 프로그램 운영 소프트웨어를 Lovable로 혼자 만들었다. 10년 전이었다면 50만 달러가 들었을 일. 실제 들어간 비용은 인건비 환산 + Lovable 구독료(월 25~50달러)를 합쳐 연 2,000달러 미만. 이후 그는 50개 프로그램 참여사의 경제적 임팩트(세금 납부, 급여, 임대료 등)까지 계산하는 기능을 추가로 요청해 받았다.
또 다른 사례로는 미국 대형 기업의 한 직원(Nursa)이 간호사 자격증·스케줄 관리 신제품을 Lovable로 구축해 시장에 출시했을 뿐 아니라, 사내 백오피스에서 기존 도구 10개 이상을 대체해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을 절감한 사례도 소개된다.
오시카는 향후 Lovable을 "AI 공동창업자(AI co-founder)"로 포지셔닝하겠다고 밝힌다. 사용자가 자는 동안에도 비즈니스 데이터를 분석해 아침에 "이런 전략 방향, 이런 최적화를 해보라"고 제안해주는 프리릴리즈 기능을 일부 고객과 테스트 중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 — 이제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모델 전략에 대해선 "고객에게 최선인 것"을 기준으로 상용 프론티어 모델(다수 벤더)과 점점 늘어나는 오픈웨이트 모델을 함께 라우팅한다고 설명한다. 스톡홀름의 리서치 팀이 포스트 트레이닝(강화학습 기반 미세조정)을 전담하며, 프론티어 모델이 자주 실수하는 지점을 데이터셋화해 자체 모델을 개선한다. 최근 앤트로픽의 신규 모델 'Fable'도 사용 중인 모델 중 하나로, "첫 시도부터 매우 정교한 결과물을 만드는 큰 폭의 성능 도약"이라 평가한다.
겔싱어 인터뷰가 겨우 6분 만에 대만·CHIPS Act·AI버블·양자컴퓨팅을 모두 훑고 지나갔듯, Lovable 파트도 "6개월마다 '러버블 죽었다'는 소문이 돌지만 그때마다 매출이 또 1억 달러씩 늘어난다"는 제이슨의 농담으로 마무리된다. 프롬프트 하나로 결제·보안·배포까지 끝내는 시대, 소프트웨어의 병목은 이제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아는 인간의 판단력으로 옮겨가고 있다.